“퇴직하고 나니 아내와 매일 싸웁니다”
“퇴직하고 나니 아내와 매일 싸웁니다”
은퇴 후 부부에게 찾아온 새로운 갈등
“선생님, 저 퇴직하고 나서 아내하고 거의 매일 싸웁니다.”
상담실에 들어오신 60대 초반의 남성분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표정이 상당히 굳어 있었습니다.
명예퇴직을 앞두고 찾아왔던 몇 달 전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때는 회사에 대한 걱정이 컸습니다.
“퇴직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생활비는 괜찮을까요?”
“다시 일을 구할 수 있을까요?”
그런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돈보다 더 힘든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내 얼굴을 하루 종일 보는 겁니다.”
순간 본인도 웃겼는지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건 아는데…”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정말 하루 종일 부딪히니까 미치겠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이렇게 싸울 일이 없었어요.”
그분은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들어왔습니다.
주말에도 가끔 회사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아내가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좋은 사람 아닙니까?”
그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요?”
“같이 있으니까 자꾸 부딪힙니다.”
문제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됩니다.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나?”
“내가 뭐 하는 사람인데 아침부터 꼭 일찍 일어나야 해?”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밥 먹었으면 그릇 좀 싱크대에 갖다 놓아.”
“그걸 꼭 내가 해야 해?”
사소한 말이
금세 말다툼이 됩니다.
“회사에서는 제가 팀장이었는데…”
그분은 퇴직 전까지
조직에서 상당한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그에게 보고했고,
그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회사에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니
아내가 말합니다.
“수건은 거기 두지 말고 여기에 놔.”
“분리수거는 오늘 해야 해.”
“장 좀 봐와.”
그분은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내가 집에서까지 지시를 받아야 하나?’
“아내는 제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합니다.”
그분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도 집안일 합니다.”
“어떤 일을 하십니까?”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가끔 장도 봅니다.”
“그런데 아내는요?”
“제가 하는 게 없다고 합니다.”
아내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남편은 집에 있으면서도
자기 방식대로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내가 도와주는 거야.”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화가 납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집인데 왜 도와준다고 생각해?”
바로 이런 말들이
두 사람의 갈등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사주를 펼쳐놓고 두 분의 성향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상담에서는
남편의 사주뿐만 아니라
아내의 사주도 함께 놓고 보았습니다.
두 분은 성향이 꽤 달랐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맡은 역할과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일의 기준과 순서를 스스로 정해놓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반면 아내는
생활 속에서 바로바로 필요한 것을 처리하고, 가족의 일상을 세세하게 챙기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남편의 방식이 장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그 방식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왜 저렇게 융통성이 없지?”
남편에게는
“왜 저렇게 간섭하지?”
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저는 아내가 저를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내가 계속 잔소리를 하니까요.”
“그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제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췄습니다.
사실 이 부부의 갈등은
수건이나 설거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밑에는
‘나는 아직 필요한 사람인가?’
라는 남편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퇴직한 남편에게 갑자기 생긴 ‘빈자리’
회사에서는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부하직원이 찾아왔고,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고,
상사가 업무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
전화가 조용해졌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곳도 없습니다.
정장을 입을 이유도 없습니다.
회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처음에는 편했습니다.
“이제야 좀 쉬는구나.”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나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이 없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TV를 켜요.”
“하루 종일 보십니까?”
“그렇지는 않은데…”
아침을 먹고,
TV를 보고,
인터넷을 보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또 TV를 봅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의 생활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출근하느라 몰랐던 것들이
하나씩 보였습니다.
“왜 청소를 이렇게 하지?”
“왜 저 물건을 저기에 두지?”
“왜 저렇게 돈을 쓰지?”
그동안 서로에게 보이지 않던 생활 방식의 차이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내에게도 남편의 퇴직은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습니다
아내 역시 힘들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자신만의 생활 리듬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면
집안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시장에 가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퇴직하고 나서 집에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아.”
아내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
상당히 서운했다고 합니다.
“사람 한 명 더 있다니…”
하지만 아내의 뜻은
남편이 싫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도 갑자기 생활의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었습니다.
은퇴 후 부부갈등은 ‘사랑이 식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 부분을 상담하면서
저는 두 분에게 강조했습니다.
퇴직 후 부부가 자주 싸운다고 해서
반드시 관계가 나빠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의 생활이 너무 가까워지면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차이가 드러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30년 동안
남편은 회사에서,
아내는 가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퇴직하면서
두 사람의 생활 영역이 갑자기 겹쳐진 것입니다.
이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편이 물었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각자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것이 부부 사이가 좋아지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히려 각자 자기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는 친구를 만나고,
남편은 운동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입니다.
같은 집에 있어도
각자의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뭘 배우면 좋을까요?”
“예전에 해보고 싶었던 게 있습니까?”
그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사진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왜 안 하셨습니까?”
“시간이 없었죠.”
“지금은 시간이 많으시잖아요.”
그가 웃었습니다.
“그러네요.”
“그럼 사진을 배우세요.”
“그게 돈이 되겠습니까?”
“꼭 돈이 되어야 합니까?”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은퇴 후에는 ‘돈이 되는 일’만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준비는 중요합니다.
생활비와 연금,
건강관리,
자산관리 등은 현실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은퇴 후 모든 활동을
수입으로 연결하려고 하면
또 다른 스트레스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활동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채우기 위한 것이어도 됩니다.
사진,
운동,
여행,
악기,
독서,
봉사,
공부.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럼 집안일은 어떻게 나누죠?”
이번에는 아내가 물었습니다.
저는 두 분께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표현부터 바꾸자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두 분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분이 함께 사는 집을 함께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편도 웃었습니다.
남편에게 부탁한 아주 작은 변화
“앞으로 일주일 동안 이것만 해보세요.”
“뭡니까?”
“아내가 부탁하기 전에 한 가지 집안일을 먼저 하십시오.”
“한 가지요?”
“네.”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분은 생각하다가
“분리수거요.”
라고 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고맙다고 하지 않아도 아무 말 하지 마세요.”
그가 웃었습니다.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아내에게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분도 한 가지 바꾸셔야 합니다.”
“뭘요?”
“남편이 한 일을 바로 평가하지 마세요.”
아내가 웃었습니다.
“제가 좀 잔소리를 하죠?”
“조금이 아니라 많이 하시는 편입니다.”
두 분 모두 웃었습니다.
상담실 분위기가 처음보다 조금 부드러워졌습니다.
“당신이 해준 걸 인정해볼게.”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동안 당신이 회사에서 고생한 건 알아.”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있으니까 자꾸 내가 힘들어져서…”
말끝이 흐려졌습니다.
남편이 처음으로 아내의 말을 끊지 않고 들었습니다.
남편도 처음으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나도 미안해.”
아내가 쳐다보았습니다.
“뭐가?”
“내가 회사에서 하던 방식으로 집에서도 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아내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말을 이었습니다.
“퇴직하고 나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아서 예민했던 것 같아.”
그 순간
상담실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았습니다.
부부가 싸우고 있었지만 사실은 둘 다 불안했습니다
남편은
‘내 역할이 사라졌다.’
라는 불안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앞으로 남편과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불안이 있었습니다.
둘 다 불안했지만
그 감정이
짜증과 잔소리,
무시와 반박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의 겉모습만 보면
“누가 옳은가?”
를 따지게 됩니다.
하지만 상담에서는
“왜 이런 감정이 생겼는가?”
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주상담에서 부부의 관계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궁합을 본다고 해서
“좋습니다.”
“나쁩니다.”
두 가지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계속 대화해야 안정감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직접적인 표현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런 차이를 알면
상대방을
“왜 저래?”
라고 보기보다
“저 사람은 저런 방식이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퇴직 후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저는 두 분에게
퇴직 후의 생활규칙을 함께 만들어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침에는 함께 산책하기.
오전에는 각자 시간을 보내기.
점심은 상황에 따라 함께 먹기.
오후에는 남편은 운동이나 공부.
아내는 친구나 취미활동.
저녁에는 함께 식사하기.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둘이 함께 외출하기.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생활과
함께하는 생활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우리도 데이트를 해야 하나요?”
남편이 웃으며 물었습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요.”
“그래서 더 필요합니다.”
아내가 웃었습니다.
“데이트라고 해도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근처 공원을 걷는 것.
중요한 것은
‘집안일을 처리하는 부부’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몇 달 후 다시 만났습니다
남편의 얼굴이 훨씬 밝아졌습니다.
“요즘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싸움은요?”
“물론 싸우죠.”
아내가 옆에서 웃었습니다.
“안 싸우는 부부가 어디 있어요.”
남편도 웃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크게 싸우지는 않아요.”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제가 오전마다 나갑니다.”
“어디로요?”
“사진 배우러 갑니다.”
아내에게도 새로운 생활이 생겼습니다
아내 역시
주 2회 친구들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서로의 생활에
조금씩 공간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아내가 말합니다.
“오늘 뭐 배웠어?”
남편은 사진 이야기를 합니다.
아내는 운동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는
“왜 또 여기 있었어?”
“왜 이것을 안 했어?”
같은 이야기가 많았다면
이제는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퇴직하고 나서 오히려 아내를 다시 알게 됐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제가 아내를 너무 오래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요?”
“막상 같이 살아보니까 제가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아내도 웃었습니다.
“나도 당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생각보다 당신이 재미있는 사람이더라.”
두 사람 모두 웃었습니다.
은퇴는 부부에게 위기이면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부부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남편은 직장으로,
아내는 가정으로,
혹은 두 사람 모두 직장으로.
그런데 은퇴하면
생활의 구조가 바뀝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충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잘 지나면
오히려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던 부부에서
다시 두 사람만의 부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녀가 독립한 뒤에는 더 그렇습니다
50~60대가 되면
자녀도 점점 독립합니다.
집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줄어듭니다.
그러면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부부 사이의 중심이었던 가정이라면
이제는
부부 둘만의 생활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 우리도 여행 한번 가보려고요.”
상담 마지막에
남편이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제주도요.”
“두 분이요?”
“네.”
아내가 옆에서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싸우지 말고 가보려고요.”
제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여행 가서 싸우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각자 호텔 방으로 들어가야죠.”
아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방 하나인데?”
상담실 안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오래 산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사랑하는 법’일지도 모릅니다
20년,
30년,
40년을 함께 산 부부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조금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생활을 존중하고,
상대의 시간을 인정하고,
상대가 힘들 때 들어주고,
필요할 때 기다려주는 것.
그것도 사랑입니다.
특히 은퇴 후에는
사랑보다 먼저 ‘존중’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삶이 있고, 나도 내 삶이 있다.”
이 말이
은퇴 후 부부에게는 중요합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다고
부부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함께할 때는 제대로 함께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상담을 마치며
퇴직 후 아내와 매일 싸운다는 남편.
처음에는
“아내가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면서
그 말 뒤에 숨어 있던 것은
‘나는 이제 누구인가?’
라는 불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이제 이 사람과 하루 종일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또 다른 불안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미워해서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달라진 삶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퇴직은 직장만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퇴직은
생활의 방식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남편의 역할도 바뀌고,
아내의 역할도 바뀌고,
부부의 관계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누가 옳으냐?”
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남편은
회사에서의 직함을 내려놓고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합니다.
아내 역시
남편의 퇴직을 자신의 생활에 맞게
새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부부가 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30년을 함께 살았어도 다시 알아갈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산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합니다.
20대의 남편과
50대의 남편이 다르고,
30대의 아내와
60대의 아내도 다릅니다.
아이를 키울 때의 부부와
아이들이 떠난 뒤의 부부도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래 살았으니까 서로를 잘 알아.”
라고 생각하기보다
“이 사람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라고 다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퇴직 후 아내와 자주 다투고 계십니까?
혹은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이
왜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누가 잘못했는지부터 따지기보다
한번 서로에게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당신은 요즘 무엇이 가장 불안해?”
그리고
“앞으로 우리 둘은 어떻게 살고 싶어?”
그 질문 하나가
오래된 부부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퇴직은 끝이 아닙니다.
자녀를 키우느라,
직장생활을 하느라,
먹고살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온
두 사람이
이제 다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습니다.
싸울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생활습관이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면서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의 역할이 끝났다고
남편의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독립했다고
부부의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두 사람만의 시간이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은퇴 후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도,
더 큰 집도,
더 많은 여행도 아닐지 모릅니다.
서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아.”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살게.”
그러면서도
저녁이 되면 함께 앉아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그 정도의 거리가
오래된 부부에게는
가장 편안한 사랑의 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