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족만 위해 살았습니다

 

“평생 가족만 위해 살았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고 싶은 50대 여성, 사주를 펼쳐놓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평생 가족만 위해 살았어요.”

상담실에 들어온 50대 여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담담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들 키우고, 시부모님 모시고…”

잠시 말을 멈추셨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제가 없더라고요.”

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생각입니까?”

그분이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저도 저를 위해 살아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이기적인 걸까요?”

이 여성에게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오래 결혼생활을 이어왔고,

두 자녀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큰아이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둘째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제는 한숨 돌릴 때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어요.”

“네.”

“아침에 밥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시키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 시간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동안 뭘 했지?’

그 질문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주를 보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여행을 가고 싶습니까?”

“여행은 가고 싶죠.”

“배우고 싶은 것은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그럼 혼자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분이 웃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잠시 뒤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걸 먼저 생각하면서 살았거든요.”

그 말이 참 오래 남았습니다.




사주에서 먼저 보였던 것은 ‘희생’이었습니다

사주를 천천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분의 사주에서는 가족과 주변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게 나타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조금 힘들더라도

가족을 먼저 챙기고,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해결하려 하고,

누군가 부탁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본인을 위해 살아본 시간이 많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요.”

“혹시 가족에게 싫다는 말을 잘 못 하셨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거의 못 했어요.”

“왜요?”

“내가 참으면 되니까요.”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내가 참으면 된다.’

이 여성의 인생을 오랫동안 움직여온 문장이었습니다.




“엄마니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힘들어도 참았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밤새 곁을 지켰고,

학교에 문제가 생기면 먼저 달려갔습니다.

남편이 바쁘면 집안일을 더 맡았습니다.

시댁에 일이 생기면 자신이 움직였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아프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엄마니까요.”

그분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어머니가 힘들 때는 누가 챙겨주셨습니까?”

그분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조용히 말했습니다.

“글쎄요…”

그 순간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제가 없어진 것 같아요.”

50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남편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각자의 생활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갑자기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이 자유가 아니라

공허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무엇을 하십니까?”

“청소하고, TV 보고, 장보고…”

“그리고요?”

“그러다 하루가 끝나요.”

그분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는데…”

“지금은요?”

“하루가 너무 길어요.”




“이제는 뭔가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요.”

“네.”

“예전 같으면 남편 밥 때문에 못 간다고 했을 거예요.”

“이번에는요?”

“그냥 갔어요.”

처음으로 혼자 가족을 두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너무 편한 거예요.”

“그래서?”

“그게 미안했어요.”

저는 그 말씀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편한 것이 왜 미안합니까?”

그분도 웃었습니다.

“그러게요.”

하지만 오랫동안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해온 사람에게는

자신을 위한 즐거움조차 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 처음에는 싫어했어요.”

여행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았습니다.

“남편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왜 갑자기 혼자 여행을 가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요?”

“저도 처음에는 설명을 못 했어요.”

“왜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냥 가고 싶었어요.”

그 말이 중요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

이것이 오랫동안 가족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굉장히 큰 변화일 수 있습니다.




“사주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분이 물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요?”

저는 특정 직업 하나를 바로 말씀드리기보다

사주에 나타난 기질을 중심으로 설명드렸습니다.

이분은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활동에서 만족감을 얻는 편이었습니다.

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가족에게 에너지를 사용하다 보니

자신의 관심사를 발전시킬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지금부터는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먼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돈을 벌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분이 물었습니다.

“제가 뭔가 시작하려면 돈도 벌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활동이 반드시

돈을 벌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활력을 찾습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되찾습니다.

누군가는 작은 가게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봉사활동을 하고,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취미를 다시 시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말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무슨 말씀이든 괜찮습니다.”

“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언제부터요?”

“어릴 때부터요.”

“그런데 왜 그만두셨습니까?”

“결혼하고 아이 키우느라…”

그분이 웃었습니다.

“그림 그릴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지금 다시 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지금 그림을 그려도 될까요?”

그 질문을 듣고 저는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해도 될까요?’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는 듯한 말투였습니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제가 조심스럽게 되물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누구의 허락이 필요할까요?”

그분이 웃었습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가 참 이상하죠?”

“아닙니다.”

“이런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으니까요.”

그분은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슬픔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만난 순간의 눈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림을 배워보고 싶어요.”

상담이 끝날 무렵 그분은 결심했습니다.

“그림 학원에 한번 가볼게요.”

“좋습니다.”

“잘 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잘 그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럼요?”

“그냥 좋아서 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그분이 웃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뭐라고 할까 걱정되겠지만…”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해볼래요.”


세 달 뒤 다시 만났습니다

세 달 후 그분이 다시 상담실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첫 상담 때와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선생님, 저 요즘 그림 그려요.”

“잘하고 계십니까?”

“잘하는지는 모르겠고요.”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미있어요.”

그리고 휴대전화에서 그림 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전문가의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그분의 눈빛이 참 밝았습니다.

“남편은 뭐라고 합니까?”

“처음에는 뭐 하러 돈을 쓰냐고 하더니…”

“지금은요?”

“제가 그림 그릴 때는 방해 안 해요.”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가끔 잘 그렸다고도 해요.”


“아이들도 좋아하더라고요.”

뜻밖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엄마, 이거 뭐야?”

하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제가 뭐 했는지 이야기할 게 없었어요.”

“지금은요?”

“오늘은 그림 그렸다고 이야기해요.”

그분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가족을 위해 살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지만

가족과 멀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행복해지니

가족과 나누는 이야기도 많아졌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나를 희생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고,

배우자를 배려하고,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희생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사라질 정도로 희생해야만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도 행복하고,

가족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아이들에게도 조금 맡기려고요.”

그분이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조금만 힘들다고 하면 제가 먼저 해결해줬어요.”

“지금은요?”

“조금 기다려보려고요.”

“쉽지 않으셨겠네요.”

“처음에는 정말 불안했어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제가 다 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살아가더라고요.”

그리고 웃었습니다.

“저도 이제 제 인생을 살아야겠어요.”


50대는 끝이 아니라 ‘나를 다시 시작하는 시기’일 수 있습니다

사주 상담을 하다 보면

50대 여성분들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너무 늦은 것 같아요.”

“젊었을 때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인생을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대에는 경험이 부족할 수 있고,

30대에는 직장과 결혼 때문에 바쁠 수 있고,

40대에는 자녀와 가족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50대가 되면서

비로소

‘이제는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라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늦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저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까요?”

이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직업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공부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운동일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취미를 다시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 좋은 삶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삶입니다.


사주가 알려주는 것은 ‘남은 인생의 정답’이 아닙니다

사주를 상담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해진 답을 찾아주는 것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기질을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면 자신의 삶이 더 풍성해질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하는 것

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생의 후반기로 갈수록

재물이나 성공만이 아니라

관계,

건강한 생활,

자기만의 시간,

배움,

즐거움,

삶의 의미가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마지막에 했던 말

상담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네.”

“저는 지금까지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는 게 제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어요.”

“네.”

“그런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잠시 웃으셨습니다.

“그 전에 제가 한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휴대전화 속 그림을 다시 한번 바라보셨습니다.

“앞으로 그림도 배우고…”

“네.”

“친구들이랑 여행도 가고…”

“좋습니다.”

“그리고 제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하나씩 찾아보려고요.”


“평생 가족만 위해 살았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위해 산 것이 뭐가 잘못인가?’

물론 잘못이 아닙니다.

가족을 위해 살아온 시간은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렸다면

이제는 조금 달라져도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했다고 해서

엄마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자기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아내의 삶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가족을 충분히 돌본 사람에게는

이제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괜찮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나도 그런 것 같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오늘 아주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보셨으면 합니다.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혼자 먹어보십시오.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보십시오.

배우고 싶었던 것을 찾아보십시오.

오랫동안 미뤄둔 취미를 다시 꺼내보십시오.

그리고 가족에게 묻기 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한번 물어보십시오.

처음에는 답이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펴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저를 위해 살아보고 싶어요.”

상담실을 나서던 그분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인생의 절반을 지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늦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온 수많은 경험이 있었기에

더 깊고 단단한 자신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했던 세월을 후회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이제부터의 시간만큼은

가족의 이름만으로 채우지 않아도 됩니다.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아내이기 전에 한 사람이며,
누군가의 딸이기 전에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에도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가슴 뛰는 일이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50대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끝내야 하는 나이가 아니라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를 물어볼 수 있는 나이인지도 모릅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 조금은 나를 위해 살아도 괜찮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챙기면서도 나를 챙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이기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뒤늦게 건네는 작은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입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모아둔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해도 될까요?”

“공부는 하는데 성적이 안 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