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말을 안 하는데…”

 

아들이 말을 안 하는데…”

― 사주에서 보이는 사춘기의 변화, 엄마가 몰랐던 아들의 마음

“선생님, 우리 아들이 말을 안 해요.”

상담실에 들어오신 어머님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원래도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정말 심해졌어요.”

“어느 정도인가요?”

“학교에서 뭐 했느냐고 물어보면 ‘몰라’라고 하고요. 밥 먹었느냐고 물어보면 ‘응’. 숙제했느냐고 물어보면 ‘했어’.”

어머님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뭐 물어보면 대답은 하는데 딱 거기까지예요.”

“예전에는 어땠습니까?”

“초등학교 때는 달랐어요.”

그때 어머님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고, 친구 이야기도 하고, 자기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도 한참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요?”

“방문 닫고 들어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조심스럽게 물으셨습니다.

“혹시… 우리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사춘기라서 그런 건지, 정말 마음에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요즘 아들이 예전과 너무 달라졌다는 것이 어머님의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말이 없고,

학교에서 돌아와도 말이 없고,

저녁을 먹으면서도 휴대폰만 보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면

“없어.”

“괜찮아.”

“몰라.”

세 마디로 끝난다고 했습니다.

“친구 문제는 없대요.”

“학교생활은 어떻다고 합니까?”

“괜찮대요.”

“공부는요?”

“그냥 한다고 해요.”

“그런데 엄마 입장에서는 답답하시죠.”

“답답하죠.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님은 한숨을 쉬셨습니다.

“제가 뭘 잘못한 건가 싶기도 하고요.”




아들의 사주를 펼쳐놓는 순간

저는 아이의 사주를 천천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어머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아이는 원래 자기 속마음을 쉽게 밖으로 꺼내는 성향은 아닙니다.”

“원래부터요?”

“네. 특히 성장하면서 자기만의 세계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머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요. 어릴 때는 그래도 말을 했는데…”

“지금은 자기 생각을 혼자 정리하는 시간이 더 필요한 시기로 보입니다.”

“그럼 사춘기라서 그런 건가요?”

“사춘기의 영향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춘기를 무조건 ‘반항’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단순히 말을 안 듣는 행동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영역을 만들고,

부모와 거리를 두고,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하는 것도 성장의 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왜 엄마한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어머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제가 물어보면 그냥 대답하면 되잖아요.”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요?”

“말을 하면 엄마가 또 질문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어머님이 잠시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질문을 많이 하긴 해요.”

“예를 들어볼까요?”

“학교에서 누구랑 놀았어?”

“그다음에는요?”

“친구랑 무슨 이야기했어?”

“그리고요?”

“오늘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어?”

어머님 스스로도 웃으셨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제가 계속 물어봤네요.”

저는 웃으며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관심을 표현한 것이지만, 아이는 심문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엄마는 관심이 있어서 물어본 건데…”

이것이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입니다.

부모는 걱정해서 묻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나를 믿지 못하나?’

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는 관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내 사생활을 간섭한다.’

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부모는 도와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내 문제를 내가 해결할 기회를 뺏는다.’

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 아이처럼 자기 생각이 강하고 독립심이 자라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들이 요즘 방문을 잠가요.”

어머님이 또 하나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예전에는 방문을 열어놓고 있었어요.”

“요즘은요?”

“닫아놓습니다.”

“잠그기도 합니까?”

“가끔요.”

어머님은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제가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문을 잠그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 행동만 가지고 아이가 엄마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해졌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중학생이나 사춘기 청소년에게 자신의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곳이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곳이며,

부모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을까요?”

어머님이 걱정하셨습니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 가족과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물론 지나치게 고립되거나 일상생활에 심각한 변화가 있다면 부모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만으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사춘기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같은 질문들이 조금씩 생겨납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그냥 방에서 휴대폰만 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아이의 내면에서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 이야기를 하면 갑자기 화를 내요.”

이 부분에서 어머님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습니다.

“공부하라고 하면 그렇게 싫어해요.”

“최근 성적이 떨어졌습니까?”

“조금 떨어졌어요.”

“얼마나요?”

“큰 차이는 아닌데 제가 불안하죠.”

“그래서 자주 이야기하십니까?”

“네.”

저는 아이의 사주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 부분을 인정받는 것이 상당히 중요해 보입니다.”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하나요?”

“무조건 칭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감각을 잃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부를 안 하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어머님은 아이가 공부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는 시험을 앞두고 혼자 계획을 세우기도 했고,

자기가 관심 있는 과목은 상당히 집중해서 공부했습니다.

문제는 엄마가 옆에서

“공부했니?”

“몇 페이지 했니?”

“시험 얼마 안 남았는데 괜찮겠어?”

라고 계속 확인할 때였습니다.

그 순간 아이는 오히려 의욕을 잃었습니다.

“엄마가 간섭하면 공부가 더 하기 싫대요.”

어머님이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에게는 공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자기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경험입니다.”




사춘기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리’보다 ‘신뢰’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관리해줘야 합니다.

시간표를 챙겨주고,

숙제를 확인하고,

준비물을 챙겨줍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 조금씩 달라져야 합니다.

부모가 모든 것을 관리하는 방식에서

아이 스스로 책임지는 방식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게 혼자 하지는 못합니다.

실수도 하고,

늦잠도 자고,

숙제를 잊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가 다시 모든 것을 가져오면

아이에게 자기 책임을 경험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럼 그냥 놔두라는 말인가요?”

어머님이 물으셨습니다.

“그건 아니지요.”

저는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방치와 신뢰는 다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네 마음대로 해.’

가 아니라

‘네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필요하면 엄마가 도와줄게.’

라는 메시지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아이가 엄마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상담 중반쯤 어머님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요.”

“네.”

“아들이 저를 싫어해서 말을 안 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냥 자기 세계가 생긴 거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이의 사주에서 보이는 기질을 설명하면서

말수가 적다고 해서 정이 없는 것은 아니고, 표현이 적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아이는 사랑하면 더 많이 말합니다.

어떤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편하게 침묵합니다.

이 아이는 후자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럼 엄마는 언제 말을 걸어야 하나요?”

어머님이 현실적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이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항상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요?”

“부담 없는 이야기를 먼저 해보세요.”

예를 들어

“오늘 급식 맛있었어?”

“요즘 듣는 음악 있니?”

“엄마가 이거 봤는데 재미있더라.”

이런 이야기는 좋습니다.

반면

“너 요즘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무슨 고민 있어?”

“친구랑 싸웠어?”

“엄마한테 숨기는 거 있지?”

이런 질문은 아이를 더 닫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어요.”

상담 후 한 달 정도 지나 어머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세요?”

“아들이 먼저 말을 걸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게임 이야기요.”

어머님은 웃으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것 좀 그만해’라고 했을 텐데요.”

“이번에는요?”

“그냥 들었어요.”

“그래서요?”

“한참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날 이후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게임 이야기,

친구 이야기,

학교 이야기.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와의 대화는 거창한 상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이가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부모가 자녀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이야기해.”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이야기했을 때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친구와 싸웠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네가 잘못했겠지.”

라고 하면 다음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했는데

“그럴 줄 알았다.”

라고 하면 숨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랬구나.”

“그때 네 마음은 어땠어?”

라고 물어주면

아이에게는 이런 경험이 생깁니다.

‘엄마에게 말해도 괜찮구나.’

그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다시 부모에게 돌아옵니다.


사주에서 보이는 사춘기의 변화

명리학적으로도 청소년기는 단순히 나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원국의 기질에 더해 대운과 세운의 변화가 겹치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지거나,

독립심이 커지거나,

감정의 폭이 넓어지거나,

사회적 관계에 민감해지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같은 사춘기라도 아이마다 다릅니다.

어떤 아이는 반항으로 나타나고,

어떤 아이는 말수가 줄어드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어떤 아이는 공부에 몰입하고,

어떤 아이는 친구 관계에 집중합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와 크게 충돌하지만,

어떤 아이는 조용히 자기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따라서 사춘기를 하나의 공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현재의 변화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아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요?”

상담 마지막에 어머님이 물으셨습니다.

“지금처럼 말이 없으면 나중에도 그런가요?”

저는 웃으며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의 모습만 보고 미래를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춘기는 완성된 성격이 아니라

성격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금 자기 생각을 깊이 하고,

혼자 고민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훗날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너는 이상해.’

라는 메시지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너는 네 방식대로 자라고 있구나.’

라고 바라봐주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들을 믿어주면 달라집니다.”

물론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에게 심각한 우울감이나 불안이 지속되거나,

학교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거나,

평소와 다른 행동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사주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말수가 줄었다.’

‘방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줄었다.’

정도의 변화라면

그것을 무조건 문제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마치며

어머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네.”

“오늘 아들 사주를 보러 왔는데…”

“네.”

“사실 제가 제 아들을 너무 어린아이처럼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도 제가 챙겨줘야 하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자기 인생을 준비하는 아이였네요.”

그 말에 어머님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아들이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부모는 당황합니다.

어제까지 엄마에게 학교 이야기를 하던 아이가

오늘은 방문을 닫습니다.

아빠가 장난을 걸어도 시큰둥합니다.

질문을 하면 짧게 대답합니다.

함께 외출하자고 하면 귀찮다고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왜 갑자기 변했지?’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반드시 부모와 멀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이제

부모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멀어지는 것 같을 때, 너무 빨리 붙잡지 마세요

사춘기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얼마나 가까이 있어야 하고,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가’

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아이가 부담스러워하고,

너무 멀리 있으면 아이가 혼자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관심을 갖되 감시하지 않고,

도와주되 대신 해결하지 않고,

조언하되 강요하지 않고,

기다리되 방치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가 어느 날 먼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왜 이제 나왔어?”

라고 묻기보다

“왔어? 밥 먹을래?”

라고 자연스럽게 맞아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춘기 아들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안정감일지도 모릅니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말이야…”

상담 후 몇 달 뒤 어머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엄마.”

“응?”

“나 오늘 학교에서 웃긴 일 있었어.”

어머님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무슨 일인데?”

하고 바로 물었겠지만,

그날은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 뭐가 웃겼어?”

그러자 아들이 한참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친구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학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

어머님은 중간에 몇 번이나 웃고 싶었지만 참고 끝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다 마친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엄마, 내일도 얘기해줄게.”

그 말을 들은 어머님은

아들이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주를 통해 아이의 기질을 살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를 정해진 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는 왜 이렇게 행동할까?’라는 질문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사춘기는 아이가 부모에게서 멀어지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들이 말을 안 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물론 세심하게 살펴야 할 신호가 있다면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침묵이라면,

그 침묵 속에서 아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가 자기 마음의 문을 조금 열었을 때,

부모가 그 앞에 서서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있다면

아이는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사춘기는 부모와 아이가 멀어지는 끝이 아니라,
아이를 ‘한 사람의 어른’으로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부모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은 어쩌면 이것일 것입니다.

“엄마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되든 너를 믿어.”

그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긴 사춘기를 건너가는 든든한 등불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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