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어요”
엄마가 된 여성의 사주를 펼쳐보니… 내가 사라진 것 같았던 이유
“선생님, 이상해요.”
상담실에 들어오신 30대 중반의 여성분이 자리에 앉자마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무엇이 이상하신가요?”
“아이를 낳고 나서 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좋은 쪽으로 달라졌습니까, 힘든 쪽으로 달라졌습니까?”
그 질문에 여성분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조용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둘 다인 것 같아요.”
그분에게는 네 살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아이를 보면 너무 예뻐요.”
그러다가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런데…”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말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의 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결혼 전에는 직장생활을 꽤 적극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여행도 자주 다녔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일에서도 욕심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었어요.”
“승진 욕심도 있었습니까?”
“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취미생활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챙기고,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데려오고,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면 하루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똑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아이를 낳고 제가 너무 예민해졌어요.”
그분이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자신의 감정 변화였습니다.
“예전에는 별일 아닌 건 그냥 넘겼거든요.”
“지금은요?”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려요.”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서운하고,
아이가 아프면 온종일 걱정되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게 되면 불안해졌습니다.
“내가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 건가?”
이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사주를 펼쳐놓고 먼저 살펴본 것은 ‘엄마로서의 운’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성분의 사주를 펼쳐놓고
먼저 한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사주 상담을 할 때
결혼을 했다고 해서
‘아내의 사주’만 보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엄마의 사주’만 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의 변화 역시
단순히 ‘자녀운’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생활환경의 변화,
책임의 증가,
배우자와의 관계 변화,
직업의 변화,
자신의 우선순위 변화 등이
모두 함께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 여성분의 사주에서는
원래부터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이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려는 성향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자
여성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요.”
“어떤 일이든 대충 하는 성격이 아니시죠?”
“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분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이의 식사,
수면,
교육,
생활습관,
놀이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썼습니다.
인터넷에서 육아 정보를 찾아보고,
좋다는 책을 읽고,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도 찾아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육아가 점점
‘아이를 사랑하는 일’에서
‘내가 잘해야 하는 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된 뒤부터 계속 시험을 보는 기분이에요.”
이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가 시험을 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네.”
“제가 계속 제 자신을 평가해요.”
오늘 아이에게 화를 냈으면
‘나는 나쁜 엄마인가?’
아이 밥을 제대로 못 챙긴 날에는
‘내가 엄마 자격이 있나?’
아이와 놀아주지 못한 날에는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자신을 평가하는 일이 더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선생님, 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은 사주 질문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질문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먼저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오셨습니다.”
그분이 눈물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앞으로도 아이만 잘 키우면 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뿐 아니라 본인의 인생도 함께 돌보셔야 합니다.”
사주에서 보이는 ‘나’와 ‘엄마’의 균형
이 여성분에게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집중하는 힘이 강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직장인으로,
결혼 후에는 아내로,
아이를 낳은 뒤에는 엄마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문제는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역할을 하는 나’만 남고
‘그냥 나’가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육아를 하는 많은 분들이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럼 제가 일을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여성분이 물었습니다.
“회사에 다시 들어가고 싶으신가요?”
“그것도 모르겠어요.”
“왜요?”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아이에게 미안할 것 같아요.”
이 말에서
그분의 마음속 갈등이 보였습니다.
일하고 싶은 마음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삶을 갖는다고 해서
아이를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엄마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가지고,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족 전체의 건강한 균형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다시 직장에 나가세요.”
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가능한 형태의 삶을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 꼭 직장이어야 할까요?”
저는 물었습니다.
“직장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여성분이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예전의 직업을 그대로 되찾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온라인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고,
자격증을 준비할 수도 있고,
시간제 일을 할 수도 있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취미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와 차 한 잔 마시는 시간도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안 하셨습니까?”
“아이 낳고 나서 한 번도 제대로 못 했어요.”
“왜요?”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저는 웃으며 물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은 너무 길까요?”
“길죠.”
“그럼 20분은요?”
여성분이 생각하다가 웃었습니다.
“20분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삶의 변화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분에게
당장 직장을 구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루 20분을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정해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위한 시간도 아니고,
남편을 위한 시간도 아니고,
집안일을 위한 시간도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한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20분도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
라는 감각을 되찾는 데에는
이런 작은 시간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이해해줄까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도 잘 돌봤고,
경제적으로도 가정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제가 말 안 했어요.”
“왜요?”
“남편도 힘든데 제가 힘들다고 하면…”
그분은 늘 참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폭발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하루 종일 집에서 노는 줄 알아?”
그날 이후 부부 사이에 냉랭한 분위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힘들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역할입니다.”
저는 남편에게
‘당신이 잘못했다.’
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자신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 너무 힘들어요.”
보다는
“토요일 오전 두 시간은 제가 혼자 쉴 수 있도록 아이를 봐주세요.”
처럼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부부관계에서는 훨씬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사주를 보니까 제가 왜 이렇게 사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여성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원래 책임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제가 너무 많은 것을 혼자 짊어졌네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장점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때로는 단점처럼 나타날 수 있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남에게 맡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쉬는 것을 죄책감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장 마지막에 놓을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가요?”
여성분이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답해야 합니다.
엄마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가 지나치게 지치고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상태가
가족에게 항상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아이냐, 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나의 삶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균형을 만드는 것입니다.
몇 달 뒤, 그녀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상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저 그림 다시 시작했어요.”
“정말요?”
“네.”
처음에는 하루 20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30분,
1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그림을 좋아했던 친구와
다시 연락도 했다고 합니다.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무슨 말이요?”
“너 예전보다 얼굴이 좋아졌다고요.”
그 말에 본인도 놀랐다고 합니다.
“아이도 엄마가 달라진 걸 아는 것 같아요.”
어느 날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엄마 옆으로 와서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 뭐 그려?”
“엄마가 좋아하는 거.”
“나도 해볼래.”
그날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
라는 의무감으로 놀았다면
그날은
엄마도 즐겁고 아이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차이가 상당히 컸다고 합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를 낳고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는 여성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면
삶의 중심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그 이전의 내가 완전히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업을 가졌던 나,
친구를 만나던 나,
꿈을 꾸던 나,
무언가를 배우던 나,
혼자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나.
그 모든 ‘나’가
엄마가 된 나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주에서 자녀운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의 삶을 상담할 때도
단순히
‘자녀운이 좋다.’
‘자녀복이 있다.’
정도로 끝내서는 부족합니다.
아이와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지,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맡기 쉬운지,
자녀에게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는 경향은 없는지,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을 어떻게 균형 잡을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주는 운명을 결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참고 틀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선생님,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마지막 상담에서
여성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인생이 망가진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거네요.”
“무엇이요?”
“인생이 끝난 게 아니라…”
잠시 생각하더니 웃었습니다.
“인생의 중심이 너무 아이 쪽으로만 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엄마에게도 두 번째 인생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시기는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린아이가 어느 순간 학교에 가고,
친구가 생기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그때 엄마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엄마는
아이에게 독립할 시간이 왔을 때
오히려 허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조금씩 자신의 삶을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작은 취미 하나,
배우고 싶은 공부 하나,
친구들과의 관계,
자신만의 일.
그것들이 훗날
엄마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어요.”
이 말을 하는 여성에게
저는
“당연한 일입니다.”
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몸도,
생활도,
시간도,
관계도,
가치관도,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엄마가 된 것은 ‘나’라는 사람을 잃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로운 역할 하나가
내 인생에 더해졌다는 뜻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나를 사랑하는 것은 반대가 아닙니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것.
그 마음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자신을 돌보는 것 역시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루에 20분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십시오.
그 시간에는
‘엄마’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담을 마치며 제가 그녀에게 드린 말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겁니다.”
그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 아이에게도 자기 인생이 생깁니다.”
“네.”
“그러니 엄마에게도 엄마 자신의 인생이 있어야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이의 인생을 잘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교육입니다.”
그분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웃었습니다.
“선생님, 저도 다시 저를 찾아볼게요.”
상담실 문이 닫히고
한동안 그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인생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 인생이 나빠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역할이 너무 커져
잠시 ‘나’를 잊어버렸을 뿐일 수 있습니다.
엄마가 된 나도 나이고,
그 이전의 나도 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나 역시
분명히 나입니다.
사주를 통해 자신의 기질과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목적을 향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살면서도
나의 꿈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된 이후의 인생은
끝난 인생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부터 다시 써 내려갈
새로운 인생의 한 장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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