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식에게서 마음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이제 자식에게서 마음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평생 자녀 걱정으로 살아온 60대 어머니가 사주를 들고 찾아온 날
“선생님…”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60대 중반의 여성분이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계셨습니다.
차를 한 잔 권해드리고 천천히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 그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너무 못된 엄마인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자식한테서 마음을 좀 내려놓고 싶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분의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평생 자식 걱정만 하고 살았거든요.”
“네.”
“그런데 이제는…”
잠시 말을 멈추시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제 인생을 살고 싶어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분에게는 자녀가 둘 있었습니다.
아들은 30대 후반,
딸은 30대 중반이었습니다.
둘 다 성인이었고
각자의 직업과 생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아이들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결혼한 지 5년 됐어요.”
“네.”
“그런데도 매일 걱정돼요.”
“무슨 걱정이십니까?”
“돈은 잘 벌고 있는지…”
“네.”
“부부싸움은 안 하는지…”
“네.”
“손주는 잘 크는지…”
“그러시군요.”
“딸도 마찬가지예요.”
딸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늘 걱정했습니다.
밥은 제대로 먹는지,
직장에서 힘든 일은 없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제가 연락을 안 하면 아이들이 먼저 연락을 안 해요.”
그분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연락하게 됩니다.”
“하루에 몇 번 정도 하십니까?”
“아침에 한 번…”
잠시 생각하시더니
“점심에도 하고요.”
“저녁에도요.”
저는 웃으며 물었습니다.
“연락해서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세요?”
그분도 조금 웃었습니다.
“밥 먹었냐고요.”
“그리고요?”
“차 조심해서 다니라고 하고…”
“또요?”
“요즘 날씨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으라고 하고…”
말을 하다 보니
본인도 조금 민망한지 웃으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귀찮아하는 것 같아요.”
그분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아들이 얼마 전에는 그러더라고요.”
“뭐라고 했습니까?”
“엄마, 저도 이제 제 인생이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셨습니까?”
“아니요.”
잠시 침묵.
“섭섭했어요.”
그런데 그 섭섭함보다 더 큰 감정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저는 뭐죠?”
그분이 물었습니다.
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분의 삶에서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 컸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손주를 돌보면서
평생 자신의 역할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엄마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 빈자리가
허전함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사주를 펼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강한 책임감’이었습니다
그분의 사주를 살펴보면서
자녀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명리학에서 자녀와 관련된 기운을 살펴볼 때는
식상과 자녀와의 관계,
전체적인 오행의 흐름,
운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봅니다.
그런데 이분은
단순히 자녀를 사랑하는 정도를 넘어
가족의 문제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느끼는 성향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자녀가 해결해야 할 일도
자신이 먼저 걱정했습니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제가 더 힘들어요.”
그분이 말했습니다.
“아들이 회사에서 힘들다고 하면 밤에 잠이 안 와요.”
“아드님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요?”
“그렇죠.”
“그런데도 걱정되십니까?”
“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먼저 나섰습니다.
학교 문제,
친구 문제,
시험 문제,
취업 문제,
결혼 문제까지.
자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이 대신 해결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잘 자랐습니다.”
이 말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분이 자녀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랑과 책임감 덕분에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성장한 이후에도 부모의 역할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의 엄마는
아직도 아이들을 초등학생처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저 없이도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분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래서 더 허전합니다.”
이것이 참 역설적입니다.
자녀가 잘되면
부모는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자녀가 부모의 도움 없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하면
부모에게는 빈자리가 생깁니다.
그동안
‘아이를 위해서’
라는 이유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이유가 조금씩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놓는 것과 버리는 것은 다릅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그분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의 인생을 아이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그분은 한참 생각하셨습니다.
“아이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아들이 회사를 옮길지 고민한다고 합시다.
예전 같으면
어머니가 인터넷을 찾아보고,
지인에게 물어보고,
아들에게 이 회사가 좋다, 저 회사가 좋다고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해.”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딸이 결혼 문제로 고민한다면
“그 남자는 안 돼.”
라고 단정하기보다
“네가 그 사람과 살았을 때 행복할 것 같아?”
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에게서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입니다.
“그게 제일 어려워요.”
그분이 웃으셨습니다.
“입이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저도 웃었습니다.
“그동안 30년 넘게 하던 일이니까요.”
“맞아요.”
“갑자기 끊으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오히려
하루에 한 번 하던 연락을
조금씩 줄여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확인하는 연락’과 ‘사랑하는 연락’은 다릅니다
이분에게는
자녀에게 연락하는 목적을
구분해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밥 먹었니?”
라는 말도
사랑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확인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다.’
라는 불안에서 나온다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락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연락하는 이유는 사랑인가, 불안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불안해서 연락했던 것 같아요.”
그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이 전화를 안 받으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아요.”
“그렇군요.”
“한 번 안 받으면 또 전화하고…”
“네.”
“두 번 안 받으면 며느리한테 전화할까 고민하고…”
그분도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웃으셨습니다.
“제가 너무 심했죠?”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걱정이 자녀에게 전달될 때
자녀는 사랑보다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연락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에게 매일 연락하지 않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이 바빠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
배우자,
자녀,
경제적인 문제 등
자녀에게도 자신만의 삶이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은
부모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럼 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이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이 질문이 이번 상담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놓을까?’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자녀를 놓은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입니다.
“엄마가 아닌 나를 찾아보세요.”
저는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못 하셨던 일이 있습니까?”
그분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여행이요.”
“여행을 좋아하셨습니까?”
“네.”
“어디 가고 싶으세요?”
“남편하고 제주도도 가고 싶고…”
잠시 생각하더니 웃었습니다.
“친구들이랑 일본도 가보고 싶어요.”
“그럼 왜 못 가셨습니까?”
“아이들 챙기느라요.”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취미도 하나 만들어보세요.”
그분은 젊을 때
그림을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림을 다시 해보는 건 어떠세요?”
“제가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왜 안 됩니까?”
그분이 웃었습니다.
“환갑이 넘었는데…”
“그림 그리는 데 나이가 있습니까?”
그분도 웃었습니다.
사주에서 중요한 것은 ‘자녀운’만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이 자녀 문제로 상담을 오시면
대부분 자녀 사주를 먼저 보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 아이가 잘될까요?”
“결혼할까요?”
“돈을 잘 벌까요?”
“부모에게 잘할까요?”
물론 자녀의 성향이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 자신의 사주와 인생 흐름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가 성장한 뒤
부모의 인생에 새로운 흐름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떠나는 것은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부모는 상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자녀에게 쏟았던 시간,
에너지,
관심을
이제 자신의 삶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고,
누군가는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작은 일을 다시 시작하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취미를 찾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에게는
배우자와 다시 둘만의 관계를 만드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남편하고도 할 이야기가 없어요.”
그분이 갑자기 말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 아니면 할 이야기가 없어요.”
이것 역시
많은 부모님들이 겪는 문제입니다.
부부가 오랫동안
‘부모’라는 역할로만 살아온 것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는
“학교는?”
“밥은?”
“학원은?”
“성적은?”
이런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떠나고 나니
두 사람 사이에 남은 이야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과의 관계도 다시 만들어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자녀가 아니라 두 분의 이야기를 해보세요.”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어디를 여행할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아주 사소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부부가 다시
‘엄마와 아빠’가 아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식에게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게 이런 거였군요.”
몇 주 뒤
그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아들한테 먼저 전화하는 횟수를 줄였습니다.”
“어떠세요?”
“처음에는 너무 불안했어요.”
“그런데요?”
“며칠 지나니까…”
잠시 웃으셨습니다.
“아들이 먼저 전화하더라고요.”
“뭐라고 하던가요?”
“엄마 요즘 뭐 해?”
그분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먼저 묻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엄마가 계속 물었습니다.
“밥 먹었니?”
“회사 잘 다니니?”
“아이들은 괜찮니?”
그런데 이제는
아들이 먼저 묻습니다.
“엄마는?”
“나는 그림 배우러 다녀.”
“그림?”
“응.”
“엄마가 그림을 좋아했어?”
그 질문을 듣고
그분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내가 그림을 좋아했다는 걸 아들이 모르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자녀를 키우느라
정작 자신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엄마에게도 인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분의 목소리가 밝아졌습니다.
“이제는 아이들한테 제 걱정만 이야기하지 않으려고요.”
“대신요?”
“제가 뭘 하고 사는지도 이야기하려고요.”
그것이 바로
건강한 거리였습니다.
자녀에게서 완전히 마음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만드는 것.
부모가 행복하면 자녀도 편해집니다
부모가 자녀의 모든 문제를 걱정하면
자녀 역시 부모에게서 자유롭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아빠가 실망할까 봐…”
자녀도 자신의 선택을 망설이게 됩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면
자녀 역시 부모를 안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해서라도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분이 마지막 상담에서 하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아요.”
“무엇을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 아이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은 다르다는 걸요.”
저는 그 말이
이번 상담의 가장 중요한 결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에게서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녀를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락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도와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겨도
모른 척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녀의 인생과 내 인생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선택한 결과는
자녀가 경험하게 하고,
실패할 때는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믿어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도와주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은
자녀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평생
“우리 아들…”
“우리 딸…”
이라고 불렀던 분에게
이제는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제는
자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질문할 시간입니다.
상담을 마치며 제가 드린 마지막 말씀
“자녀에게 마음을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그분이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아이들이 잘못될까 봐 걱정됩니다.”
“걱정하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죠.”
“엄마니까요.”
그분이 웃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해서 아이의 인생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네.”
“그러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하는 엄마가 아니라…”
잠시 말을 멈추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엄마일 수도 있습니다.”
그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저도 제 인생을 살아볼게요.”
상담실을 나가기 전
그분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입니다.
“아들이 잘 살고 있는지 매일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죠?”
“네.”
“딸이 결혼을 언제 하는지도 너무 걱정하지 않고…”
“네.”
“그 시간에 제가 그림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고…”
“그렇습니다.”
그분이 웃으셨습니다.
“생각보다 할 일이 많네요.”
저도 웃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오래 아이들만 바라보고 사셨으니까요.”
자녀가 떠난 자리에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
부모에게 자녀는
평생 마음 한가운데 남아 있는 존재입니다.
자녀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게는 여전히 걱정스럽고,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자녀에게도
자신의 인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도
자신의 인생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나는 괜찮으니 너도 네 인생을 살아라.”
라고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녀가 실패할 때
대신 실패해줄 수는 없습니다.
자녀가 선택할 때
대신 선택해줄 수도 없습니다.
자녀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때로는 한 발 뒤로 물러나
그 아이를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자식에게서 마음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힘든 것일 수 있습니다.
평생 자녀를 먼저 생각했다면
이제는 조금씩
자기 자신을 생각해도 됩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배우자와 시간을 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도 즐겨보십시오.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인생을 존중하면서도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녀를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를 믿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가 상담실을 나서며 했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제가 행복하게 살아야겠어요.”
어쩌면
그 말이야말로
자녀에게서 마음을 내려놓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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